나는 기독교인이다. 교회에서 집사 직분도 받았다.
그러면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15년 넘게 IT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굳이 이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으면서 이 두 가지가 계속 부딪혔기 때문이다.
하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해온 사람으로서의 생각이다.
사실 제목부터 좀 이상하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니.

알랭 드 보통은 무신론자인데 종교를 없애자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을 믿지 않더라도 종교가 오랫동안 해온 일 중에 가져올 만한 것들이 꽤 많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나는 기독교인이니까.
예배나 기도, 교회 공동체를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기능처럼 바라보는 것 자체가 내 신앙의 관점과는 다르다.
그런데 읽다 보니 묘하게 재미있었다.
나는 평생 종교의 안쪽에서 봤는데, 이 사람은 완전히 바깥에서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 사람은 하나하나 궁금해한다.
왜 사람들은 매주 모일까.
왜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들을까.
왜 같이 노래하고 같이 밥을 먹을까.
왜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처럼 매년 같은 날을 반복해서 기념할까.
왜 죽음이나 결혼 같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꼭 의례가 있을까.
기독교인인 나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별로 질문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15년 넘게 IT 일을 한 내 입장에서는 또 이게 묘하게 익숙한 접근이었다.
오래된 시스템을 볼 때 비슷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
IT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오래된 시스템을 많이 만난다.
당장 다 뜯어고치고 싶은 것도 있다.
그런데 오래 일하다 보니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코드 한 줄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장애를 겪고 추가된 코드일 수도 있고,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예외 상황을 처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오래된 것을 보면 '왜 아직도 이게 있지?'보다 '이게 왜 생겼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종교도 비슷하게 보였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모이고, 기도하고, 노래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과학이 발전하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이런 행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단순히 사람들이 비합리적이어서 그런 걸까.
알랭 드 보통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그는 종교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이 부분에서 꽤 공감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잘 잊어버린다.
좋은 이야기를 듣고 감동해도 며칠 지나면 잊는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도 외로워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계속 비교한다.
그러니까 한 번 좋은 말을 들려준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또 모이고, 또 듣고, 또 이야기한다.
여기서 나는 SRE가 조금 생각났다.
SRE도 시스템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설계하지 않는다.
장애는 난다.
사람도 실수한다.
중요한 건 '절대 실패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했을 때 어떻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다.
물론 종교와 SRE를 같은 것으로 볼 생각은 없다.
그냥 15년 넘게 시스템을 운영해온 사람으로서, 종교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이상하게 익숙한 부분이 있었다는 얘기다.
종교는 애초에 인간이 완벽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잊어버리니까 다시 이야기하고,
흔들리니까 다시 모이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공동체를 만들고,
누군가 죽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의례를 만들었다.
그런 것들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반복됐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알랭 드 보통과 나는 갈라진다.
그에게 종교는 인간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지혜에 가깝지만, 나에게 종교는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기도하는 이유가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예배를 드리는 이유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그건 아닌데' 싶은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오히려 그 부분이었다.
내가 종교 안에 너무 오래 있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종교 밖에 있는 사람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교회 공동체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기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종교가 없는 사람이 종교의 의례가 인간에게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약간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이걸 매주 하고 있는데, 정작 왜 하고 있는지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기술은 정말 많이 발전했다.
내가 IT 일을 시작한 이후 15년 동안만 생각해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서버를 직접 설치하던 것에서 클라우드로 넘어왔고, 컨테이너가 등장했고, 이제는 AI에게 말을 걸어서 코드를 만드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사람은 별로 안 바뀐 것 같다.
여전히 사랑 때문에 힘들고,
돈 때문에 걱정하고,
남과 비교하고,
외로워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슬프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이건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오래된 시스템을 보면 최신 기술로 바꾸고 싶었다.
요즘은 조금 다르다.
15년 넘게 이 일을 해보니 오래 살아남은 시스템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면서 걷어냈다가 나중에 그 역할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종교를 믿지는 않는다.
그런데 종교를 그냥 걷어내버리지는 않는다.
'신은 믿지 않더라도, 이것까지 버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 질문이 좋았다.
기독교인인 나는 그의 결론과는 다른 곳에 서 있다.
그럼에도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고 나니 내가 너무 익숙해서 별 생각 없이 해왔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왜 매주 교회에 갈까.
왜 같이 예배를 드릴까.
왜 같은 성경을 평생 반복해서 읽을까.
그리고 왜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종교를 필요로 했을까.
어쩌면 종교가 아직도 오래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었는데,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바뀌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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